시작하기 전에, 타로 덱을 갖고 계시다면 잠깐 꺼내 보세요. 그리고 두 장을 찾아보세요 — 힘(Strength) 카드와 정의(Justice) 카드요. 힘이 8번, 정의가 11번일 겁니다. 그런데 이 번호, 원래는 반대였습니다. 수백 년 동안 유럽의 타로에서 정의가 8번이었고 힘이 11번이었어요. 어느 날 누군가 이 두 카드의 자리를 맞바꿨고, 그 바뀐 번호가 지금 당신 손의 카드에 그대로 찍혀 있는 겁니다. 누가, 왜, 무슨 권한으로 500년 된 카드의 순서를 바꿨을까요. 그 답을 따라가면 130년 전 런던의 어느 비밀결사에 도착합니다 — 노벨문학상 시인이 회원이었고, 훗날 "세상에서 가장 사악한 남자"로 불릴 인물이 신전 문을 부수고 쳐들어왔으며, 결국 자기들이 그토록 지키던 비밀을 지키는 데 실패한 덕분에 오늘의 타로를 만들어버린 조직. 황금새벽회(Golden Dawn) 이야기입니다.
1900년 4월, 런던 — 가면 쓴 남자와 시인의 몸싸움
이야기의 한복판부터 볼게요. 1900년 4월 19일, 런던 블라이드 로드 36번지에서 실제로 있었던 일입니다. 한 남자가 어느 건물의 문을 박차고 들어왔어요. 스코틀랜드 전통 의상에 검은 가면을 쓰고 허리에는 단검을 찬 차림으로, 그는 이 건물이 이제 자기 관할이라고 선언했습니다. 그런데 그를 막아선 사람이 뜻밖의 인물이었어요. 훗날 노벨문학상을 받게 되는 아일랜드의 국민 시인,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였습니다. 마법 결사의 신전을 놓고 벌어진 이 대결은 주문도 저주도 아닌 몸싸움과 경찰 신고로 끝났고, 가면의 침입자는 쫓겨났습니다. 시인은 대체 왜 마법 결사의 문지기를 서고 있었고, 가면의 남자는 누구였을까요. 13년 전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위조 편지 위에 세워진 결사
1887년 런던, 웨스트콧이라는 검시관이 낡은 암호 문서를 손에 넣습니다. 해독해 보니 마법 결사의 입문 의식이 적혀 있었고, 문서 사이에서 독일에 산다는 신비한 여성 달인의 연락처까지 나왔어요. 그는 그녀와 편지를 주고받아 영국에 결사를 세워도 좋다는 허가장을 받아냈고 — 그렇게 1888년 황금새벽회가 문을 열었습니다. 멋진 창립 설화죠. 문제는, 훗날 연구자들이 조사해 보니 그 독일의 달인은 실존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고 편지들은 웨스트콧 본인이 위조한 것으로 보인다는 겁니다. 오늘의 타로를 만든 조직이 가짜 편지 위에 세워진 셈인데 — 이 시리즈를 읽어오신 분들은 웃으실 거예요. 이집트 기원설부터 비밀 메시지 전설까지, 타로의 역사는 정말이지 그럴듯한 이야기를 지어내는 사람들의 역사니까요.
출발이야 어쨌든 이 결사는 진심이었습니다. 유럽에 흩어져 있던 신비 지식을 끌어모아 타로를 중심에 놓고 하나의 체계로 엮었고, 그 지식을 목숨처럼 지켰어요. 얼마나 진심이었냐면 — 결사의 타로는 인쇄가 금지되어 있어서, 회원들은 비전 문서를 각자 손으로 베껴 그려 자기만의 덱을 만들어야 했습니다. 침묵 서약에 유출 금지까지, 세상에서 가장 폐쇄적인 타로 스터디였죠. 그런데 그 폐쇄적인 문 안에 모인 얼굴들이 화려했습니다. 시인 예이츠, 당대의 유명 배우, 아일랜드의 혁명가, 공포문학의 거장들 — 빅토리아 시대 런던의 예술가들이 밤이 되면 이 신전에 모여 카드를 공부했어요.
"세상에서 가장 사악한 남자"
그리고 문제의 그 남자가 입회합니다. 앨리스터 크로울리 — 부유한 집안 출신의 젊은 오컬티스트로, 재능은 눈부셨지만 오만함은 더 눈부셨던 인물이에요. 훗날 그는 스캔들과 기행으로 영국 언론으로부터 "세상에서 가장 사악한 남자"라는 별명을 얻게 됩니다. 결사 안에서 크로울리는 파리에 있던 수장 매더스의 총애를 받았는데, 마침 매더스와 런던 지부의 사이가 틀어져 있었어요. 런던 회원들이 자신의 권위를 거부하자, 매더스는 런던 신전을 강제 접수하기로 하고 수제자를 보냅니다. 그 수제자가 바로 첫 장면의 가면 쓴 남자 — 크로울리였고, 신전을 지키는 런던 쪽 대표가 예이츠였던 거예요. 결과는 보신 대로입니다. 크로울리는 문전박대당했고, 이어진 법정 다툼에서도 패해 결사에서 완전히 쫓겨났습니다. 그리고 이 내분으로 황금새벽회는 산산조각이 났어요.
비밀 지키기에 실패한 덕분에
그런데 타로의 역사에서 보면 이 붕괴는 축복이었습니다. 조직이 쪼개지면서, 금고 속 비밀이 조각조각 세상으로 새어 나가기 시작했거든요. 그 조각 하나를 챙긴 사람이 아서 에드워드 웨이트 — 1호에서 만난 그 웨이트입니다. 그는 이 지식을 손으로 베껴 그리는 비밀로 싸매둘 게 아니라 제대로 된 덱으로 출판하기로 결심했고, 같은 결사의 회원이던 화가 파멜라 콜먼 스미스에게 그림을 맡겼습니다. 그렇게 1909년, 침묵 서약 아래 잠자던 상징들이 서점에서 누구나 살 수 있는 카드가 됐어요 — 라이더-웨이트-스미스 덱입니다. 한편 쫓겨난 크로울리는 어떻게 됐을까요. 그도 수십 년 뒤 화가 프리다 해리스와 함께 자기만의 답안지를 냅니다. 토트 타로 — 4호에서 소개한 그 클래식 2인자요. 그러니까 오늘날 타로의 양대 산맥으로 불리는 웨이트 덱과 토트 덱은, 사실 같은 비밀결사에서 갈라져 나온 형제입니다. 100여 년 전 신전 문 앞에서 몸싸움을 벌였던 두 남자의 카드를, 지금 전 세계가 나란히 쓰고 있는 거예요.
지문 클로즈업 — 힘과 정의는 왜 자리를 바꿨나
이제 처음의 그 수수께끼로 돌아갑니다. 힘과 정의의 번호는 왜 바뀌었을까요. 범인은 황금새벽회였습니다. 이들은 타로 카드를 별자리와 하나하나 짝지었는데, 힘은 사자를 다루는 그림이니 사자자리에, 정의는 저울을 든 그림이니 천칭자리에 대응됐어요. 그런데 문제가 생깁니다. 별자리의 순서와 카드의 순서를 나란히 놓으니 딱 이 두 장만 어긋나는 거예요. 그래서 이들은 과감한 결정을 내립니다 — 500년 된 카드의 자리를 맞바꿔 버린 것. 정의가 8번 자리를 내주고 11번으로, 힘이 11번에서 8번으로요. 웨이트는 자신의 덱에 이 교체를 그대로 반영했고, 그 덱이 세계 표준이 되면서 오늘날 대부분의 타로가 이 순서를 따르게 됐습니다. 그러니까 지금 당신 덱의 8번 자리에 사자를 쓰다듬는 여인이 있다는 것 자체가 — 130년 전 비밀결사가 남긴 지문인 거예요. 참고로 마르세유 계열 덱을 쓰신다면 지금도 정의가 8번일 겁니다. 그 덱은 결사의 손이 닿기 전의 순서를 지키고 있는 거고요.
그래서 이 이야기가 남긴 것
황금새벽회 자체는 위조 편지로 태어나 내분으로 무너진, 수명 20년 남짓의 조직이었습니다. 역사에 남을 이유가 없는 동아리였을지도 몰라요. 그런데 이 결사는 이상한 방식으로 불멸이 됐습니다. 카드의 번호에서, "타로에는 깊은 상징 체계가 있다"는 오늘날의 감각 그 자체에서 — 이들은 지금도 살아 있거든요. 그토록 지키려던 비밀이 유출된 덕분에, 손으로 베껴 그리던 카드가 서점의 상품이 된 덕분에요. 역사상 가장 성공한 비밀결사는, 어쩌면 비밀 지키기에 실패한 결사인 셈입니다. 그리고 저는 이 결말이 타로답다고 생각해요. 꽁꽁 싸매둔 지식은 스무 명의 것이었지만, 풀려난 지식은 백 년 넘게 수천만 명의 밤을 지켜주고 있으니까요. 당신 덱의 8번 카드를 볼 때마다, 이제 그 소동의 전말이 함께 보이실 겁니다.
EVELY'S NOTE
손으로 카드를 한 장 한 장 베껴 그리며 공부하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좋아합니다. 방법은 낡았지만 마음은 알 것 같거든요 — 카드 한 장을 오래 들여다본 시간만큼 리딩이 깊어진다는 것. 이 글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블리에게 물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