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VELY TAROT GUIDE · 제2호

불타는 카드,
카드 속에 숨은 여인

— 종교인들이 타로를 멀리하게 된 진짜 이야기 —

지난 글에서 우리는 타로가 원래 점치는 카드가 아니라 귀족들의 카드 게임이었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렇다면 당연히 이런 의문이 들죠. 점술도 아니었던 한낱 놀이 카드를, 교회는 대체 왜 그렇게 미워하게 됐을까? 오늘은 그 답이 되는 두 개의 실화를 들려드리려고 합니다. 하나는 카드가 광장에서 불태워지던 시절의 이야기이고, 다른 하나는 여자의 몸으로 교황이 되려 했다가 화형당한 어느 수녀가, 죽은 지 150년 만에 타로 카드 속에서 되살아난 이야기입니다. 둘 다 지어낸 이야기가 아니라 재판 기록과 연대기에 남아있는 역사입니다.

첫 번째 이야기 — 교회는 왜 카드를 불태웠나

1370년대, 카드라는 물건이 유럽에 처음 들어왔습니다. 반응은 폭발적이었어요. 술집마다 노름판이 벌어졌고, 노동자들은 일감을 팽개치고 카드판에 붙어 앉았으며, 가산을 탕진하는 사람이 속출했습니다. 그러자 도시들이 움직였어요. 카드가 들어온 지 채 몇 년도 되지 않은 1377년에 파리가, 1379년에는 스위스의 장크트갈렌이 "평일에 카드놀이를 금한다"는 조례를 만듭니다. 오늘날 게임 셧다운제와 놀랄 만큼 닮은 풍경인데, 이때 교회가 카드를 겨냥한 이유를 잘 봐두셔야 해요. 점술이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아직 타로는 점치는 카드가 아니었으니까요. 교회가 미워한 것은 도박 — 정확히는 도박판에서 벌어지는 탕진과 싸움, 그리고 하느님의 이름을 걸고 내뱉는 욕설과 맹세였습니다.

이 분노를 광장으로 끌어낸 사람이 시에나의 베르나르디노라는 설교자였습니다. 도시마다 수만 명의 청중을 몰고 다니던 당대 최고의 스타 설교자였는데, 그의 설교 방식이 독특했어요. 도박이 얼마나 영혼을 갉아먹는지 몇 시간에 걸쳐 토해내고 나면, 감화된 시민들에게 회개의 행동을 요구했습니다. 집에 있는 노름 도구를 지금 광장으로 가져와 불태우라는 것이었죠. 그래서 1423년 볼로냐에서 그의 설교가 끝났을 때, 광장에는 모닥불이 피워졌고 시민들이 던져 넣은 카드 수천 장이 재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불구경에는 뒷이야기가 하나 전해집니다. 카드가 몽땅 타버리자 먹고살 길이 막막해진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카드를 그려 팔던 화가였어요. 그가 설교자를 찾아가 따졌습니다. 당신 때문에 내 밥줄이 끊겼다고. 그러자 베르나르디노는 자신이 설교 때마다 치켜들던 문양 — 태양 한가운데 예수의 이름 머리글자가 새겨진 그 문양을 내밀며 이렇게 답했다고 해요. 그렇다면 이제부터는 이것을 그리시오. 전해지기로 화가는 그 문양을 그려 팔아 카드를 만들 때보다 더 번창했다고 합니다. 교회와 카드 장인의 첫 충돌이 파국이 아니라 업종 전환으로 마무리된, 묘하게 인간적인 결말이죠.

비스콘티-스포르차 타로 덱의 운명의 바퀴 카드, 15세기
비스콘티-스포르차 덱의 '운명의 바퀴', 15세기. 이 시절 교회가 겨눈 것은 카드 그림이 아니라, 운에 재산과 영혼을 거는 도박판이었다. 이미지: Wikimedia Commons, 퍼블릭 도메인

이 카드 화형식이라는 전통은 베르나르디노의 제자들에게 이어져 점점 스케일이 커졌습니다. 1452년 독일 뉘른베르크에서는 제자 카피스트라노가 세 시간짜리 설교를 했는데, 그 한 번의 설교에 감화된 시민들이 광장에 들고나온 물건이 연대기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게임판 3,640개, 주사위 4만 개, 그리고 셀 수 없이 많은 카드. 전부 불탔습니다. 얄궂은 사실은 뉘른베르크가 당시 유럽 최대의 카드 생산 도시 중 하나였다는 점이에요. 카드 공장 도시 한복판에서 카드 화형식이 열렸는데, 그 뒤로도 이 도시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카드를 계속 만들어 팔았습니다. 신앙은 신앙이고 장사는 장사였던 거죠.

이 모든 모닥불의 정점이 1497년 피렌체의 그 유명한 '허영의 모닥불'입니다. 사보나롤라라는 수도사의 주도로 광장에 15미터 높이의 나무 탑이 세워졌고, 시민들은 거울과 향수와 비단 드레스와 시집, 그리고 노름판과 카드 꾸러미를 산더미처럼 쌓아 불태웠어요. 그리고 이 이야기의 결말은 역사가 쓴 각본 중에서도 손꼽히게 잔인합니다. 불과 1년 뒤, 사보나롤라 본인이 교황과 대립하다 이단으로 몰렸고 — 자신이 모닥불을 피웠던 바로 그 광장에서 화형당했거든요.

여기까지가 첫 번째 이야기입니다. 기억해두실 것은 하나예요. 이 시절 교회와 카드의 갈등은 '점술 대 신앙'이 아니라 '도박 대 신앙'의 싸움이었다는 것. 그런데 카드에는 도박과 전혀 상관없는, 훨씬 위험한 그림이 한 장 숨어 있었습니다.

두 번째 이야기 — 여자 교황이 되려 했던 수녀

타로 트럼프에는 교황 카드가 있습니다. 최고 성직자를 놀이판의 패로 쓴다는 것부터가 교회 입장에서는 아슬아슬한 일인데, 진짜 문제는 그 옆의 2번 카드였어요. 교황의 삼중관을 쓴 여자가 앉아 있는 카드 — 여교황(La Papessa)입니다. 가톨릭 역사에 여자 교황은 존재한 적이 없습니다. 존재해서는 안 되는 인물이죠. 교리상 사제 서품은 남성만 받을 수 있고, 따라서 교황도 당연히 남성만 될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카드 속에는 버젓이 여자가 교황의 관을 쓰고 앉아 있는 겁니다. 이 여인은 대체 누구이며, 왜 여기 있는 걸까요?

비스콘티-스포르차 타로 덱의 여교황 카드
비스콘티-스포르차 덱의 '여교황'. 교황의 삼중관을 썼지만, 자세히 보면 화려한 예복이 아닌 수수한 수녀복 차림이다. 이미지: Wikimedia Commons, 퍼블릭 도메인

미술사학자들이 지목하는 유력한 후보가 한 명 있습니다. 그 이야기를 하려면 카드가 만들어지기 150년 전, 1300년의 밀라노로 가야 해요.

당시 밀라노에는 굴리엘마라는 여인의 무덤이 있었습니다. 살아생전 보헤미아의 왕녀라는 소문이 돌던 신비로운 여인이었는데, 병자를 고쳤다는 이야기가 퍼지면서 죽은 뒤에 무덤이 순례지가 됐어요. 그런데 그 무덤가에 모여들던 사람들 사이에서,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대담한 믿음이 자라났습니다. 굴리엘마는 그냥 성녀가 아니라 성령이 여자의 몸으로 세상에 오신 것이며, 그녀가 곧 부활할 것이고, 부활과 함께 지금의 타락한 교회는 무너지고 여자들이 이끄는 새로운 교회의 시대가 열린다는 믿음이었어요. 여성 교황, 여성 추기경, 여성 사제로 이루어진 교회 — 1300년의 유럽에서 이건 상상 자체가 죄가 되는 그림이었습니다.

이 모임을 이끈 사람이 만프레다라는 수녀였습니다. 밀라노의 명문가 출신으로, 당시 밀라노의 지배자였던 마테오 비스콘티와 사촌지간이었죠. 신도들은 굴리엘마가 부활하면 새 교회의 첫 교황은 만프레다가 될 것이라 믿었고, 실제로 그녀를 미리 교황처럼 대했습니다. 그녀의 설교를 들으러 귀족들이 모여들었고, 사람들은 그녀 앞에 무릎을 꿇고 교황에게 하듯 손에 입을 맞췄어요.

여기서 잠깐, 이게 당시에 얼마나 위험한 일이었는지를 설명해야 이다음이 이해가 됩니다. 중세 교회법에서 미사를 집전하고 성체를 축성하는 일은 서품받은 남성 사제만 할 수 있었습니다. 여성이 그걸 흉내 내는 것은 단순한 규칙 위반이 아니라 신성모독이고, 교회의 근본 교리를 부정하는 이단이었어요. 그리고 이단은 당시 법으로 최고형, 즉 화형까지 가능한 범죄였습니다. 게다가 "지금의 교회는 타락했고 곧 무너진다"는 이들의 믿음은, 로마의 교황 입장에서는 자기 권좌를 정면으로 부정하는 선전포고나 다름없었죠.

그런데 1300년 4월 10일 부활절, 만프레다가 그 선을 넘습니다. 신도들 앞에서 직접 미사를 집전하고 성체를 축성한 거예요. 여자가, 교황처럼, 미사를 올린 겁니다. 밀라노의 좁은 상류사회에서 귀족 수십 명이 모이는 모임이 언제까지고 비밀일 수는 없었습니다. 소문은 퍼졌고, 결국 이단 감시를 맡고 있던 도미니코회 수도사들의 귀에 들어갔어요. 그래서 부활절로부터 겨우 9일 뒤, 만프레다에게 종교재판소의 소환장이 날아든 겁니다.

재판은 그해 7월에 정식으로 열려 12월까지 반년을 끌었습니다. 끌려간 사람은 만프레다 혼자가 아니었어요. 신도 30여 명이 줄줄이 소환됐는데, 이유가 있습니다. 당시 종교재판은 이단을 '믿은' 사람뿐 아니라 이단인 줄 알면서 '따르고 숨겨준' 사람까지 전부 죄인으로 봤거든요. 그 모임에 나갔던 사람이라면 귀족이든 부인이든 예외가 없었던 겁니다. 심문의 목적은 자백을 받아내는 것이었고 — 당신은 만프레다를 교황이라 믿었는가, 굴리엘마를 성령이라 불렀는가 — 재판 기록에 따르면 핵심 자백들은 고문으로 받아냈습니다. 그렇게 받아낸 자백을 근거로 재판소는 이 모임 전체를 이단으로 판결했고, 심지어 죽은 지 20년 가까이 된 굴리엘마에게까지 사후 이단 판결을 내렸습니다.

만프레다에게 희망이 아주 없지는 않았습니다. 사촌이 이 도시의 지배자였으니까요. 실제로 마테오 비스콘티는 이 재판을 못마땅해했다고 전해집니다. 하지만 그는 당시 교황과 정치적으로 대립하던 처지라, 여기서 사촌을 감싸다가 '이단 비호자'로 몰리면 자기 권력까지 위험해질 상황이었어요. 결국 권력자 사촌은 침묵을 택했고, 판결은 그대로 집행됩니다. 1300년 가을, 밀라노의 베트라 광장에서 만프레다는 공동체의 핵심 동료 두 명과 함께 화형당했습니다. 재판소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굴리엘마의 무덤을 파헤쳐 유해를 꺼냈고, 그 뼈를 같은 불 속에 던졌습니다. 이 신앙의 흔적을 지상에서 완전히 지우겠다는 뜻이었죠. 그리고 실제로 지워졌습니다 — 적어도, 모두가 그렇게 알았습니다.

150년 뒤, 카드 속에서

시간이 흘러 1450년 무렵의 밀라노. 비스콘티 가문의 마지막 핏줄인 비앙카 마리아 공작부인이 화가에게 호화 카드 한 벌을 주문합니다. 지난 글에서 만난 바로 그 비스콘티-스포르차 덱이에요. 그런데 완성된 덱의 여교황 카드를 자세히 보면 이상한 점이 있습니다. 교황의 삼중관을 쓴 이 여인이 화려한 교황 예복이 아니라 수수한 갈색 수녀복을 입고 있거든요. 그 옷은 만프레다가 속했던 수도회의 복장이었습니다. 1966년 미술사학자 모클리가 이 점을 지목한 이래, 카드 속 여교황의 모델이 만프레다라는 설은 학계에서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어요.

정황 증거는 더 있습니다. 그 반년짜리 재판의 심문 기록은 보통이라면 교회 문서고에 있어야 할 텐데, 연구자들은 사촌 마테오가 그 기록을 압수해 가문에 보관했기에 지금까지 남았다고 봅니다. 그리고 카드를 주문한 비앙카 마리아는 굴리엘마를 성녀로 그린 성화까지 후원했는데, 그 그림은 지금도 이탈리아 브루나테의 성당에 걸려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림이 이렇게 말하고 있는 셈이에요. 150년 전 광장에서는 침묵할 수밖에 없었던 가문이, 안에서는 그 여인들을 한 번도 잊은 적이 없었다고.

교회가 불태워서 지운 여인이, 그 가문이 만든 놀이 카드 속에서 삼중관을 쓰고 조용히 살아남았다 — 세상에서 가장 조용한 추모가 카드 한 장 속에서 500년 넘게 이어지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오늘의 질문에 답하자면

"종교인들은 왜 타로를 멀리하나요?"라는 질문에 이제 답의 뿌리가 보이실 겁니다. 시작은 도박에 대한 분노였습니다. 그다음은 카드 속 그림 — 교황을 놀이패로 쓰고, 존재해선 안 될 여교황까지 그려 넣은 것에 대한 불편함이었죠. 그리고 세월이 흘러 타로가 정말로 점치는 카드가 되자, 미래를 미리 알려는 행위를 금하는 성경의 가르침과 정면으로 부딪히면서 오늘의 거리감이 완성됐습니다. 500년 넘게 쌓여온 긴장이니, 신앙을 가진 분들의 조심스러움에는 그럴 만한 역사가 있는 셈입니다.

참, 그 여교황 카드가 나중에 어떻게 됐는지 궁금하시죠? 1909년에 나온 한 덱에서 '여사제'라는 새 이름을 받고 논쟁의 바깥으로 걸어 나가는데 — 그 이야기, 그리고 "타로에는 비밀 메시지가 숨겨져 있다"는 전설의 진실은 다른 글에서 이어집니다.

EVELY'S NOTE

역사적으로나 현재로나, 한 기관 안에서 힘싸움이 일어나면 결국 한쪽은 무너지는 것 같습니다. 훌륭한 종교 안에서도 인간의 욕심으로 시작된 싸움이 이렇게 번지기도 하니까요. 저는 타로를 보지만, 기독교의, 천주교의, 불교의 신들이 모두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내면 안에서, 믿음으로 우리를 지켜준다고 생각해요. 제가 이 글을 쓴 이유도 그렇습니다. 타로카드는 점술이지만, 무조건 믿으라는 것도 무조건 믿지 말라는 것도 아니고, 꼭 이렇게 된다는 것도 이렇게 안 된다는 것도 아닙니다. 내면의 소리를 잘 따라가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홈페이지를 이용하시면서 여러분의 마음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최대한 노력하겠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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