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타로 덱이 몇 종류나 있을 것 같으세요? 한 타로 박물관의 소장품만 1,000종이 넘고, 지금 이 순간에도 매달 새 덱이 쏟아져 나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이 하나 있어요. 이 치열한 시장에서 1위가 100년 넘게 단 한 번도 바뀐 적이 없다는 겁니다. 오늘은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타로 덱들을 소개해드릴게요. 그런데 시작하기 전에 정직하게 말씀드릴 게 하나 있습니다. 사실 타로 덱의 정확한 전체 판매량 집계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아요. 카드는 책과 달리 출판사 직판, 전문점, 해외 유통 등으로 흩어져 팔려서 공식 통계가 없거든요. 그래서 "1억 장 팔렸다" 같은 소문이 돌아도 확인할 길이 없죠. 다만 미국의 한 작가가 서점 판매 스캔 데이터를 실제로 조사한 적이 있는데, 4년간 집계된 덱 약 177만 장 가운데 순수 라이더-웨이트 계열만 13%를 차지했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1,000종이 넘는 덱이 경쟁하는 시장에서 한 덱이 13%라는 건, 사실상 왕좌라는 뜻이에요. 그 왕좌부터 시작합니다.
라이더-웨이트-스미스 (RWS)
설명이 필요 없는 그 덱입니다. 1909년 출간 이후 1980년대에 이미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타로 덱의 자리에 올랐고, 지금까지 내려온 적이 없어요. 추정 누적 판매량은 수천만 장 — 정확한 숫자는 아무도 모르지만, 오늘 전 세계 어느 서점에 가도 매대에 놓여 있는 유일한 타로라는 것만은 분명합니다. 이 덱이 왜 특별한지, 그림을 그린 화가가 누구인지는 1호에서 이야기했었죠.
유니버셜 웨이트 & 라디언트 웨이트
사실 판매 순위의 윗자리는 RWS의 가족들이 나란히 차지하고 있습니다. 유니버셜 웨이트는 원본의 그림을 부드러운 채색으로 다시 그린 판본이고, 라디언트 웨이트는 색을 더 환하게 밝힌 판본이에요. 한국에서 "타로 입문은 유니버셜 웨이트로"라는 공식이 생긴 것도 이 덱들 덕분이죠. 말하자면 1위 자리는 한 덱이 아니라 한 가문이 차지하고 있는 셈입니다.
토트 타로 (Thoth Tarot)
웨이트의 앙숙이었던 크로울리가 화가 프리다 해리스와 5년에 걸쳐 만든 덱입니다. 정작 출판은 두 사람이 모두 세상을 떠난 뒤에야 이루어졌는데, 반세기가 지난 지금도 꾸준히 팔리는 스테디셀러예요. 판매 스캔 조사에서도 여러 판본을 합쳐 수만 장이 확인됐습니다. 웨이트 덱과 이 덱이 사실 같은 비밀결사에서 갈라져 나온 형제라는 이야기는 황금새벽회 편에서 다뤘어요.
마르세유 타로 (Tarot de Marseille)
웨이트보다 250년 이상 선배인 최고참 현역입니다. 특정 회사의 상품이 아니라 하나의 '패턴'이라서 그리모, 카뮤앙, CBD 등 수많은 출판사가 각자의 판본을 냅니다. 그 판본들을 다 합치면 누적 판매량은 어마어마할 텐데, 바로 그래서 순위 집계가 불가능한 덱이기도 해요. 영어권 순위표에는 잘 안 보여도 프랑스, 스페인, 남미에서는 지금도 이쪽이 표준입니다.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덱"의 답이 나라마다 다르다는 걸 보여주는 덱이죠.
와일드 언노운 (The Wild Unknown)
동물과 자연을 잉크로 그린 이 덱은 원래 작가 킴 크란스가 자비로 만든 인디 덱이었어요. 그런데 인스타그램에서 사진이 퍼지며 폭발적으로 팔리기 시작했고, 결국 대형 출판사가 판권을 사 가는 신데렐라 스토리를 썼습니다. "타로 덱이 SNS로 베스트셀러가 될 수 있다"는 걸 처음 증명한 덱이라, 이후 쏟아진 감성 인디 덱들의 조상님으로 불려요.
모던 위치 타로 (Modern Witch Tarot)
일러스트레이터 리사 스털이 RWS의 78장 구도를 그대로 가져오되, 등장인물을 전부 현대 여성들로 바꿔 그린 덱입니다. 스마트폰을 든 마법사, 청바지를 입은 여사제 — 출간 즉시 베스트셀러가 됐고 여러 언어로 번역됐어요. 흥미로운 건 이 덱의 성공 공식이에요. 새로운 체계를 만든 게 아니라, 110년 전 스미스의 구도를 요즘 얼굴로 다시 그렸을 뿐이라는 것.
그 밖의 스테디셀러들
명상가 오쇼의 사상을 담아 선(禪) 스타일로 만든 오쇼 젠 타로는 명상·힐링 쪽 독자들의 오랜 사랑을 받는 79장짜리 변형 덱이고, 수채화가 아름다운 섀도우스케이프, 몽환적인 라이트 시어스 타로 등도 순위표 단골입니다. 그리고 타로는 아니지만, 요즘 서점 판매량에서는 오라클 카드들이 타로를 위협할 만큼 성장했다는 것도 알아둘 만한 흐름이에요.
순위표가 말해주는 한 가지
자, 이 목록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이상한 점이 보입니다. 1위 RWS, 그 리마스터판인 유니버셜과 라디언트, RWS를 현대적으로 다시 그린 모던 위치, 그리고 여기 못 실은 수백 종의 인기 덱들까지 — 거의 전부가 한 덱의 자손이라는 거예요. 검 3을 심장에 꽂힌 세 자루의 검으로 그리고, 컵 10을 무지개 아래의 가족으로 그리는 그 문법 말이에요. 그 문법을 만든 사람은 1909년의 화가 파멜라 콜먼 스미스입니다. 그녀는 로열티 한 푼 받지 못하고 가난하게 세상을 떠났지만,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타로 덱들의 순위표는 사실상 한 여성 화가의 계보도인 셈이죠. 시장이 100년 동안 투표한 결과가 이렇습니다.
EVELY'S NOTE
저는 50개 이상의 덱을 가지고 있지만, 상담 자리에서는 4~5개의 덱을 사용하곤 합니다. 인기보다는, 그림을 봤을 때 저와 맞는 덱이 있더라고요. 카드는 도구이고 — 여러분의 이야기에 맞춰 잘 이야기해주는 카드들이 정말 있는 것 같습니다. 이 글도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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