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VELY TAROT GUIDE · 제1호

타로카드는 원래
트럼프 게임이었습니다

— 게임이 신비가 되고, 신비가 상담이 된 578년의 여정 —

촛불이 흔들리는 신비로운 점집, 베일을 쓴 점술사, 운명을 예언하는 카드. 오늘날 타로카드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들입니다. 그러나 역사적 사실은 이 이미지와 정반대의 지점에서 출발합니다. 타로는 약 580년 전 이탈리아 귀족들의 오락용 카드 게임으로 태어났으며, 탄생 후 340년이 넘도록 점술과는 아무 관련이 없었습니다. 한 벌의 게임용 카드가 어떤 우연과 오해, 그리고 몇몇 인물의 열정을 거쳐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널리 쓰이는 상담 도구가 되었는지, 다섯 개의 장면으로 따라가 봅니다.

1. 탄생 — 밀라노 궁정의 사치스러운 게임 (1440년대)

타로의 첫 무대는 15세기 이탈리아 북부의 궁정입니다. 밀라노, 페라라, 피렌체 등지의 기록에 1440년대부터 '카르테 다 트리온피(carte da trionfi)', 즉 '승리의 카드'라는 새로운 카드 덱이 등장합니다. 기존의 네 가지 수트 카드에 우화적인 그림이 그려진 으뜸패, 곧 트럼프 카드를 추가한 것으로, 오늘날 영어 단어 트럼프(trumps)가 바로 이 트리온피에서 나왔습니다. 용도는 명확했습니다. '타로키(tarocchi)'라 불리는 트릭테이킹 게임 — 쉽게 말해 귀족들의 카드 놀이였습니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타로인 비스콘티-스포르차 덱은 밀라노 공작 가문이 화가 보니파초 벰보에게 주문 제작한 것으로, 금박을 입힌 수공예품이었습니다. 카드 한 벌이 그림 한 점에 맞먹는 가격이었으니, 요즘으로 치면 명품을 주문 제작한 셈이죠. 카드에 담긴 황제, 교황, 운명의 바퀴 같은 도상들도 신비의 암호가 아니라 당대 북이탈리아의 세계관과 교양을 반영한 그림이었습니다.

비스콘티-스포르차 타로 덱의 마법사 카드, 15세기 중반
비스콘티-스포르차 덱의 '마법사', 15세기 중반 밀라노. 점술이 아니라 게임을 위해 금박으로 제작된 카드였다. 이미지: Wikimedia Commons, 퍼블릭 도메인
학술 연구가 일관되게 확인하는 사실은 하나입니다. 18세기 후반 이전에 타로가 점술에 쓰였다는 역사적 증거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타로는 유럽 각지에서 지금도 게임용 카드로 쓰이고 있습니다.

2. 전환점 — 파리 살롱에서 태어난 아름다운 오해 (1781년)

340년 동안 게임이던 타로의 운명을 바꾼 것은 한 학자의 확신에 찬 착각이었습니다. 1781년, 프랑스의 학자 앙투안 쿠르 드 제블랭은 파리의 살롱에서 타로 게임을 구경하다가 이 카드가 고대 이집트 토트 신의 지혜를 담은 비전의 서(書)라고 주장했습니다. 불타버린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에서 살아남은 고대의 지혜가 카드 게임의 형태로 전해져 왔다는 것이죠. 학문적 근거는 사실상 없었고, 훗날 로제타석이 해독되면서 이 주장은 완전히 틀린 것으로 판명됩니다.

그러나 시대가 이 오해의 편이었습니다. 프랑스 혁명 전야의 파리는 최면술과 신비주의가 살롱을 휩쓸던 곳이었고, '고대 이집트의 비밀'이라는 이야기는 들불처럼 번졌습니다. 역사적으로는 오류였지만 문화적으로는 창조였습니다. 이 순간부터 타로는 신비의 옷을 입기 시작했고, 오늘날 우리가 아는 타로의 이미지는 사실상 이 오해의 자식입니다.

토트의 서 이론 및 실습 강의록 표지, 1790년
『토트의 서 이론·실습 강의(1790)』 표지. '타로 = 이집트 토트 신의 책'이라는 오해가 낳은 시대의 유물이다. 이미지: Wikimedia Commons, 퍼블릭 도메인

3. 직업화 — 씨앗 장수, 최초의 타로 상담사가 되다 (1783~1791년)

유행에는 반드시 사업가가 따릅니다. 파리의 씨앗 장수였던 장바티스트 알리에트는 이미 1770년부터 일반 트럼프 카드로 점을 치는 법을 책으로 출판했던, 준비된 카드점 전문가였습니다. 그는 자신의 성(Alliette)을 거꾸로 뒤집은 '에테이야(Etteilla)'라는 필명으로 타로 열풍에 올라탔고, 이후 10년도 안 되는 기간에 오늘날 타로 산업의 원형을 혼자서 완성합니다.

1789년 그는 역사상 최초로 점술만을 위해 설계된 타로 덱을 출판했고, 카드마다 정방향과 역방향의 키워드를 인쇄해 넣었습니다. 파리에 상담소를 열어 유료 리딩을 했고, 수강생을 받아 타로를 가르쳤으며, 카드 배열법과 의미 사전을 체계화했습니다. 카드 제작, 상담, 교육, 출판에 이르는 사업 모델 전부가 이 평민 상인의 손에서 나왔습니다. 후대의 학자들은 그를 장사꾼이라 깔봤지만, 정작 그들이 쓰는 카드 해석의 상당 부분은 에테이야가 만든 것이었습니다. 세계 최초의 직업 타로 리더는 귀족도 마법사도 아닌, 사람들의 고민에 응답하는 일을 직업으로 만든 한 상인이었습니다.

그랑 에테이야 덱의 1번 카드 카오스
그랑 에테이야 덱의 1번 카드 '카오스'. 마법사가 아닌 카오스로 시작하는, 역사상 최초의 점술 전용 타로다. 이미지: Wikimedia Commons, 퍼블릭 도메인

4. 대중화 — 무명 화가의 손끝에서 완성된 오늘의 타로 (1909년)

19세기 프랑스의 오컬티스트들이 타로에 카발라와 점성술의 체계를 입힌 뒤, 무대는 영국 런던으로 옮겨갑니다. 1909년, 신비주의 학자 아서 에드워드 웨이트가 기획한 새로운 덱이 라이더 출판사에서 나왔습니다. 그러나 이 덱의 진짜 주인공은 그림 78장 전부를 그린 자메이카계 영국 화가 파멜라 콜먼 스미스였습니다. 그녀 이전까지 숫자 카드는 '컵 다섯 개'처럼 기호만 나열하는 방식으로 그려졌는데, 스미스는 모든 숫자 카드에 사람과 장면과 감정을 그려 넣었습니다. 전문가의 암기가 필요했던 카드가, 그림만 보고도 누구나 이야기를 읽을 수 있는 카드가 된 것입니다.

이 혁신 덕분에 타로는 비로소 대중의 것이 되었고, 라이더-웨이트 덱은 역사상 가장 많이 쓰이는 타로가 되었습니다. 스미스는 정액 보수만 받고 로열티 없이 가난하게 세상을 떠났지만, 오늘날에는 그녀의 기여를 기려 이 덱을 라이더-웨이트-스미스(RWS) 덱이라 부릅니다. 현대에 출판되는 수천 종의 덱 대부분이 그녀가 그린 장면 문법 위에 서 있습니다.

파멜라 콜먼 스미스가 그린 라이더-웨이트-스미스 덱의 바보 카드, 1909년
파멜라 콜먼 스미스가 그린 '바보(The Fool)', 1909년. 오늘날 전 세계가 아는 타로의 얼굴은 그녀의 손에서 나왔다. 이미지: Wikimedia Commons, 퍼블릭 도메인

5. 맺음말 — 578년이 말해주는 것

정리하면 타로의 연혁은 이렇게 요약됩니다. 1440년대 이탈리아에서 귀족의 카드 게임으로 탄생했고, 1781년 제블랭의 이집트 기원설로 신비의 상징이 되었으며, 1789년 에테이야에 의해 직업 상담의 도구가 되었고, 1909년 웨이트와 스미스에 의해 누구나 읽을 수 있는 대중의 언어가 되었습니다.

이 역사가 말해주는 것은 하나입니다. 타로는 완성된 채 하늘에서 떨어진 신비가 아니라, 시대마다 누군가가 사람들의 이야기에 응답하며 다시 만들어 온 도구라는 사실입니다. 게임이 상징이 되고, 상징이 상담이 된 578년의 여정은 지금도 끝나지 않았습니다. 오늘 카드 앞에 앉는 우리 역시 그 여정의 한 페이지를 쓰고 있는 셈입니다.

EVELY'S NOTE

단순히 '점 보는 카드'라고 하기에는, 타로가 지나온 길이 참 많았습니다. 귀족의 놀이였다가, 아름다운 오해를 만나고, 누군가의 직업이 되고, 한 화가의 손끝에서 모두의 이야기가 되기까지. 다음 글부터는 이 카드들에 대해, 제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부터 차례차례 풀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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